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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의 역사 5편 — 쿠퍼쌍과 BCS 이론

umo 2026. 10. 20. 16:59

1957년, 존 바딘(John Bardeen), 리언 쿠퍼(Leon Cooper), 존 로버트 슈리퍼(J. Robert Schrieffer)는 짝을 이룬 전자들이 집단적인 양자 상태에 참여한다는 관점에서 전통적인 초전도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BCS 이론으로 이어진 실험적 단서와 쿠퍼쌍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1950년, 동위원소 효과가 남긴 단서

1950년 무렵, 초전도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동위원소 질량을 바꾸면 초전도 전이온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동위원소 효과입니다.[1]

원자의 질량이 초전도 현상이 시작되는 온도에 영향을 준다면, 원자들이 이루는 결정격자의 진동도 초전도 현상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체 안의 원자는 완전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평형 위치 주변에서 끊임없이 진동합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런 집단적인 격자 진동을 포논(Phonon)으로 설명합니다. 격자 진동과 전자의 상호작용은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이유를 밝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1956년, 쿠퍼가 살펴본 두 전자

1956년, 리언 쿠퍼는 금속 내부의 두 전자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연구했습니다. 전자는 모두 같은 음전하를 갖기 때문에 서로 밀어냅니다. 하지만 결정 안에서는 전자가 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작은 변형을 만들고, 그 변형이 다른 전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정 조건에서 이 과정은 전자 사이에 유효한 인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쿠퍼는 아주 약한 인력이라도 적절한 조건에서는 두 전자가 상관된 상태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쿠퍼쌍입니다.[2]

다만 전자 두 개가 작은 공처럼 서로 딱 붙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두 전자는 양자역학적으로 상관된 상태를 이루며, 완전히 독립적인 입자처럼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이 연구는 전자 자체의 관점에서 초전도 현상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1957년, BCS 이론의 등장

그로부터 한 해 뒤인 1957년, 바딘·쿠퍼·슈리퍼는 초전도체 역사에서 중요한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세 사람의 성인 Bardeen–Cooper–Schrieffer에서 첫 글자를 따 BCS 이론이라고 부릅니다.[3]

BCS 이론은 두 전자가 짝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에서 더 나아갑니다. 수많은 전자가 쿠퍼쌍을 이루고, 독립적인 전자들로만 행동하는 대신 집단적인 양자 상태에 참여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초전도 상태에서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미시적 틀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 이론은 초전도 상태와 특정한 들뜬 상태 사이의 에너지 간극도 다룹니다. ‘저항이 0이 된다’는 관찰을 넘어, 그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 내부 전자들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BCS 이론의 기본 흐름

격자 진동에서 전자 사이의 유효 인력, 쿠퍼쌍과 집단적인 초전도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을 단순화한 개념도입니다. 실제 전자와 격자의 상호작용은 이 그림보다 복잡합니다.

결정격자 진동(포논) → 전자 사이의 유효 인력 → 쿠퍼쌍 형성 → 집단적인 초전도 상태

이 흐름은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화된 설명입니다.


1911년부터 1957년까지 이어진 연구

BCS 이론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뒤 여러 실험과 이론이 쌓이면서 등장했습니다.

연도주요 발전

1911년 오너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933년 마이스너·옥센펠트가 마이스너 효과를 발견했습니다.
1935년 런던 형제가 런던 방정식을 제시했습니다.
1950년 긴즈부르크–란다우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1950년 동위원소 효과가 중요한 실험적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1956년 쿠퍼가 인력에 의해 전자쌍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1957년 바딘·쿠퍼·슈리퍼가 BCS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오너스의 발견 → 마이스너 효과 → 런던 이론 → 긴즈부르크–란다우 이론 → 동위원소 효과 → 쿠퍼쌍 → BCS 이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거의 반세기에 걸친 실험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 이론적 발전이 모인 결과였습니다.

1972년 노벨물리학상

BCS 이론이 발표된 지 15년 뒤인 1972년, 존 바딘·리언 쿠퍼·존 로버트 슈리퍼는 초전도 이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4]

바딘은 트랜지스터 연구로 이미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BCS 이론으로 두 번째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이 이론의 중요성을 볼 수 있습니다.

초전도체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BCS 이론은 전통적인 초전도체를 설명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지만, 새로운 물질들이 발견되면서 모든 초전도체를 같은 틀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연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이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1] E. Maxwell, “Isotope Effect in the Superconductivity of Mercury,” Physical Review 78, 477 (1950).

[2] Leon N. Cooper, “Bound Electron Pairs in a Degenerate Fermi Gas,” Physical Review 104, 1189–1190 (1956).

[3] J. Bardeen, L. N. Cooper & J. R. Schrieffer, “Theory of Superconductivity,” Physical Review 108, 1175–1204 (1957).

[4] Nobel Prize Outreach, “The Nobel Prize in Physics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