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의 역사 11편 — 상온 초전도체가 바꿀 수 있는 것들
상온 초전도체는 전력 시스템과 자석에 필요한 냉각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활용성은 전류 용량, 자기장 한계, 안정성과 제조 비용에도 달려 있습니다.
전력은 산업과 기술의 기반입니다
과거에는 전력 소비를 생각하면 집의 조명, 냉장고, TV, 에어컨 같은 생활 가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AI·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전기차, 첨단 제조시설과 핵융합·차세대 컴퓨팅 같은 미래 기술에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2026~2030년 세계 전력 수요가 연평균 약 3.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산업 성장, 전기차와 데이터센터가 주요 요인에 포함됩니다.[1]
전기는 개인의 편의를 넘어 산업과 기술 경쟁력의 기반이 됐습니다. 발전량뿐 아니라 어디서 전기를 만들고, 어떻게 보내며, 필요한 곳에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할지도 중요합니다.
AI 데이터센터와 늘어나는 전력 수요

데이터센터의 서버 설비입니다. 컴퓨팅 장비뿐 아니라 장비를 가동하고 냉각할 전력도 함께 필요합니다.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의 한 축은 AI 데이터센터입니다. AI 발전은 더 빠른 컴퓨터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컴퓨터를 움직이는 데에도 막대한 전기가 들어갑니다.
IEA는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 TWh에서 2030년 약 945 TWh로 증가할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두 배 이상 늘어나는 규모이며, AI 작업에 쓰이는 고성능 서버가 중요한 요인입니다.[2]
데이터센터는 발전소, 송전선, 변전소보다 빠르게 지어질 수 있습니다.[2] AI의 발전 속도가 전력 기반시설의 확장 속도를 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 데이터센터를 논의할 때 서버나 건물보다 ‘충분한 전기를 확보할 수 있는가’가 먼저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 기업들도 이 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6년 9월 LS전선은 고밀도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솔루션을 소개하면서, 미래 전력 기반시설에 검토하는 기술 가운데 초전도 기술을 포함했습니다.[3]
모든 데이터센터에 곧 초전도 전력 시스템이 설치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전력 밀도가 높아질수록 제한된 공간에서 더 많은 전기를 전달하는 기술의 가치가 커진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전기차가 바꾸는 일상의 충전과 배전망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전기차 충전시설을 이제는 아파트, 쇼핑센터, 공영주차장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IEA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전기차 판매는 2천만 대를 넘어, 신차 약 네 대 중 한 대가 전기차였습니다.[4] 세계의 개인용 전기차 충전 지점도 4,300만 곳을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5]
전기차의 확산은 연료를 휘발유에서 전기로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차량이 매일 충전하면 배전망과 변전소, 충전 기반시설도 바뀌어야 합니다.
IEA는 현행 정책 기준으로 전기차의 전력 소비가 2035년에 1,500 TWh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4] 한 대를 충전하는 일과 수천만 대, 나아가 수억 대를 충전하는 일은 규모가 다릅니다. 교통이 전기화될수록 전력망의 역할도 커집니다.
‘인공태양’ 연구의 중심에 있는 초전도체
늘어나는 전기를 어디서 생산할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공태양’이라고도 부르는 핵융합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국제 프로젝트인 ITER에는 유럽연합, 대한민국, 미국, 중국, 일본, 인도와 러시아가 참여합니다.[6]
핵융합은 하나의 분야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플라스마 물리, 초고진공, 극저온, 재료과학, 제어 시스템과 초전도 자석 기술이 함께 필요합니다.
2026년 5월 ITER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설명한 초전도 자석 시험시설의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실물 크기의 자석을 약 4 K로 냉각해 시험하는 시설입니다.[7]
2026년 6월에는 거대한 중앙 솔레노이드의 모듈 여섯 개를 쌓는 작업이 끝났습니다. 완전히 조립된 자석의 질량은 약 1천 톤에 이릅니다.[8] 초전도 기술은 이미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중요한 이유
세계의 전력 수요가 늘고, 데이터센터는 더 많은 전기를 요구하며, 전기차는 충전 기반시설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핵융합은 강력한 초전도 자석에 의존합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MRI, 입자가속기, 일부 자기부상열차, 전력 케이블과 양자컴퓨터에도 초전도체가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많은 기술에는 매우 낮은 온도와 복잡한 냉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상온·상압에서 안정적인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는 물질이 나온다면 이 냉각 조건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전력 전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변화
초전도 상태에서는 전기저항이 사라집니다. 실용적인 상온·상압 초전도 케이블이 가능해지면 작은 공간에서 큰 전력을 전달하면서 저항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정뿐 아니라 수백 MW 규모의 데이터센터, 대규모 전기차 충전망, 반도체 공장과 산업단지처럼 한곳에서 큰 전력을 요구하는 시설도 생각해야 합니다.
초전도 케이블은 이미 실제 전력 시스템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상온·상압 물질이 나온다면 기존 시스템의 중요한 부담인 냉각을 없애거나 크게 줄이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활용 가능한 장소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MRI와 교통, 컴퓨팅에 남는 조건
MRI와 입자가속기, 일부 자기부상 시스템은 초전도 자석을 사용하고, 양자컴퓨터의 중요한 방식 중 하나는 초전도 회로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 하나가 이 기술들을 곧바로 완전히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MRI 자석은 강한 자기장 아래에서도 초전도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전력 케이블은 매우 큰 전류를 흘려야 합니다. 소재는 안정적이고 저렴하며 제조와 대량생산에 적합해야 합니다. 양자컴퓨터에는 섬세한 양자 상태를 유지하는 별도의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상온이라는 조건만으로 모든 공학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마트폰의 열에서 시작한 질문
제 관심은 ‘스마트폰이 왜 뜨거워질까’라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상온 초전도체가 생겨도 스마트폰의 열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반도체 스위칭, 회로의 손실, 프로세서와 여러 부품의 에너지 소비에서도 열이 생깁니다.
다만 일부 전력 전달 시스템이나 특수 회로에서는 저항 손실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기기의 발열이 궁금했지만, 이제는 미래에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하며 그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전달하고 사용할 수 있을지까지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소재의 조건
실용적인 물질은 상온에서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유용한 크기의 전류를 전달하고, 필요한 자기장을 견디며, 적절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조건들이 케이블과 자석, 전자기기를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참고자료
[1]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Electricity 2026, 2026.
[2]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Energy and AI, 2025.
[3] LS Cable & System, announcement on AI data-center power infrastructure solutions, September 29, 2026.
[4]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Global EV Outlook 2026, 2026.
[5]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Global EV Outlook 2026 — Electric Vehicle Charging, 2026.
[6] ITER Organization, overview of ITER members and international collaboration.
[8] ITER Organization, Central Solenoid assembly update, June 29, 2026.